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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일상

[드라마리뷰]베토벤바이러스16회-클래식의 자존심

클래식의 자존심

늘 글은 여러 분이 불편한 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알게 모르게 각자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역안으로 누가 다가서면(=침입하면) 공격성을 보이던가 아니면 불안함을 느낍니다.
정확한 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심리학적으로도 개인 방어 구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암울했던 시기에는 정보 기관에서 이것을 이용해 범죄 혐의자를 취조할 때 밀실에 불을 끄고 밝은 전등을 혐의자 바로 머리 위에 켜고 심문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면 밝은 전등아래 노출되어 있는 혐의자는 더 도망갈 곳이 없고 주위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에 순순히 있는 죄 없는 죄를 고백한다고 하죠.
또 혐의자에게 무릎이 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가 앉아서 강한 말로 압박을 하면 혐의자는 자기의 개인 영역을 무참하게 침범당한 무기력감에 수월하게 자백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축관련 일에 종사하시는 분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장의자를 제작할 때도 개인 거리를 고려하여 제작을 합니다. 또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 간에도 기준 거리가 있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심리적으로 서로 불안감을 느껴서 시원한 용변이 안된다고 합니다.^^


강마에의 영역

강마에
(김명민 분)에게도 자기 영역이 있습니다.
어제 방송분에서 그것은 클래식이었고 강마에 자신이었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자존심이라는 말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자세히 보면 강마에는 무대에서는 고개를 숙여 관객에게 인사를 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그가 시장이던 나이가 많은 김갑용(이순재 분)이던지간에 말입니다.
걷는 자세도 한결같습니다.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왼손에는 가방을 들고 지휘봉을 들었던 오른손은 몸에 밀착하고 반쯤 올린 자세로 걷습니다.(배우 김명민의 극해석과 캐릭터 연구 정신이 만들어낸 걸작입니다)

그런 그에게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클래식과 자기가 구축한 영역을 허무느냐 아니면 단원들을 살릴 것이냐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질 않습니다.
'신임 시장의 취임 식장에 연주좀 해 줄수 있지 않느냐'며 그것이 무슨 대수냐며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강마에에게 취임식장의 연주(특히 대중가요 연주)는 그에게는 굴종이자 음악에서 그의 존재를 일시에 허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인순이의 예술의 공연 불허는 영역의 충돌

최근에 불거진 가수 인순이의 예술의 전당 공연 불허 방침과도 연관이 있는 문제입니다.
필자도 대형가수 인순이를 좋아합니다만 이번 경우는 인순이의 식견이 짧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인순이의 생각에는 나도 대형가수이고 가창력있고 실력을 인정받았는에 공연 불허 통보를 받으니 자존심이 상한거겠죠. 그런데 자존심이 상했다고 그렇게 높으신 분을 동원하며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은 대형가수답지 않은 낮은 처신이었습니다.

그녀가 '그렇습니까? 제가 좀 더 노력하여 예술의 전당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하겠습니다'하고 쿨하게 나갔다면 그녀는 더 많은 사람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의 전당은 클래식의 영역이고 그 기준은 예술의 전당에서 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한 행동은 마치 육상 100M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였다고 유럽의 명문 축구팀의 센터포드를 시켜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생떼입니다.
다 같은 스포츠지만 동일한 스포츠가 아니듯이 같은 음악이지만 동일한 음악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강마에의 굴종의 이유는 사랑

초기에 강마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권유에 의해 굴종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또다른 비겁함을 제지하고 나선 것이 예전의 단원들이었습니다.
깐깐함(자존심)은 강마에이고 강마에는 그들의 기댈 언덕이었습니다.
이런 깐깐함을 버리고 평범한 음악인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단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들의 존재가 없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는 밉지만 음악적 깐깐함을 갖고 있는 강마에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루미(이지아 분)는 이제 음악적 스승을 흠모함에 넘쳐 인간적 강마에를 사랑함에 굴종을 권유했지만 다시 그의 자신에 찬 깐깐함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서로 다른 영역을 존중하고 인정하자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영역과 기준이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나의 영역안으로 끌어내려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세워주면서 서로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기독교에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만의 영역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한 '머슴'과 일반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머슴'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와 다르다면 저급하다고 손가락질하며 상대방을 몰아 세웁니다.
어찌보면 나의 수준보다 상대방의 수준이 더 높을 수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상대방의 수준이 낮다면 비난할 것이 아니라 설명하고 이끌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서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
나부터 시작합시다^^

(※ 필자가 쓴 베토벤 바이러스 리뷰에는 소제목이 있습니다.
소제목은 미술의 캐리커처로 보시면 됩니다. 전체를 그리기 보다 특징을 잡아서 그리는 그림.
즉 본 리뷰는 전체를 본 감상문이 아니라 일부분만을 잡아서 리뷰를 작성한 것입니다.
전체 드라마의 내용을 보시려면 다른 블로그의 글을 보시거나 방송사의 다시보기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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