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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일상

나는 김구라의 폭탄개그가 싫다


날에 희극인을 '개그맨'이라고 지칭하기 전에는 '코메디언'이라고 불렀었다.

그 당시 코메디는 곧잘 언론에서 '저질 코메디'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래서 그 당시 잘 나가는 구봉서, 배삼룡 같은 희극인들은 이 말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기회만 있으면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곤 했다.

내용인즉슨
"억울하다. 실컷 잘 웃다가 저질이라니 무슨 말이냐? 우리도 넘어지고 자빠지고식 코메디는 하고 싶지 않다. 우리도 미국처럼 마이크만 잡고 청중들을 웃길 수 있다. 그러자면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예를 들어 버스 안내양에 대한 코메디를 하면 전국의 버스 안내양이 집단 항의를 한다.
우편 집배원에 대한 코메디를 하면 전국의 우편 집배원이 집단 항의를 한다.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코메디 소재란 것이 도둑놈이고 내 몸을 자빠지고 넘어뜨려서 웃음을 주는 것 뿐이다"

참 지금 들으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옛날 그 코메디언이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에게 막말하는 개그의 시작은?

지금의 방송 코메디는 내 몸을 학대하여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게스트를 쥐어 박고 무안을 주고 해서 얻어내는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억지 코메디다.
지금이야말로 저질 코메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저질스런 코메디는 언제부터 우리 가까이에 오게 된 것일까?
필자는 강호동이 몰고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몰고 왔다기보다 물꼬를 텄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30년 가량을 몸으로 상대방을 넘어 뜨려야 살아 남는 직업군에서 넘어 온 강호동은 개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초기에는 예전 방식대로 자기 몸을 학대하여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전통 방식으로 등장하였다. 초기의 큰 몸집을 흔들며 뒤뚱거리다가 여자 개그맨에게 따귀를 맞는 장면에 우리는 많이 웃어 주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개그계에 이름을 올린 강호동은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처럼 초기의 개그 방식을 버리고 자기식의 개그를 선보였다. 그것이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다. 빅히트였다. 게스트를 쥐어 박고 게스트끼리 치고 박게 만들고 나중에는 군대 훈련을 방불케하는 스파르타식 개그인 여자 연예인을 안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몇시간동안 반복시켰다. 그 방송이 얼마나 히트였는지 유선방송에서는 몇년을 그 방송을 편집하여 재방송해 주었다.

이로부터 강호동식 개그가 대세가 된 것 같다.
더불어 이 시기에 가세한 이영자, 이경실, 이경규, 박명수가 불을 지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위에 열거한 개그맨은 강호동보다 대선배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들의 개그가 상대방을 희화화하여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방향에 가세하거나 강도를 더 심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애교로 보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김구라의 등장은 폭탄 개그의 화려한 전성기

                                                        < 이효리에게 거듭 사죄한 김구라. ⓒ KBS <상상플러스>
2007년도에 어둠의 세계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김구라라는 인물은 거대한 먹구름을 몰고 왔다.

2007년도가 그에게는 현실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워밍업의 시기라고 한다면 2008년도는 김구라의 개그는 활짝 어둠의 꽃이 핀 계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의 개그는 폭탄에 비견할만 하다.

옛날에는 나를 희생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나는 살고 상대는 깔아 뭉개고 독설을 퍼부어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다. 그런 면에서 나는 폭탄 개그라 명하고 싶다. 이경규는 어느 프로그램에서 김구라의 개그를 농약 개그라 했지만 내가 볼 때 그의 개그는 그냥 농약 정도가 아니라 폭탄이다.                                      
                                                     
이제는 폭탄 개그가 대세다.
대부분의 개그맨들이 이 방식을 쓰고 있고 매너 좋기로 유명한 유재석도 가끔 무한도전이나 해피투게더에서 박명수를 희화화시켜서 웃음을 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천하의 유재석도 폭탄 개그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아쉬운 김제동의 연예가 중계 하차

그래서 이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그맨은 퇴출되거나 딴 것을 알아보아야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제동연예가 중계 하차와 다른 사람에게 싫은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박수홍의 음식프로 진행이다.

모두다 알다싶이 김제동은 현재 개그계에서 하한가이다.

어떤 분들은 그의 하한가를 소재의 빈곤을 꼽지만 나는 그가 현 개그계에 적응을 못해서로 보고 있다. 순박한 대구 출신의 마음 약한 그가 상대방을 망가뜨리지 못하니 자기의 못생긴 얼굴이나 가정사로는 더 이상 보여 줄 것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자연 위축되고 위축되고 긴장하니 더 안되는 것이다.

한때 촌천살인의 어록이 인터넷에 떠돌고 인구에 회자되던 그의 사라짐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막말하는 개그와 비슷한 사회 분위기

김구라의 개그가 몰고 온 것이 개그계 뿐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몰고 온 먹구름은 사회 분위기마저 상대방을 짓밞는 것으로써 내가 사는 정글의 법칙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사회 분위기를 몰고 갔는지 아니면 사회 분위기가 그래서 그가 등장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그가 지상파 방송에서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회의 자연 정화 속도가 훨씬 빨라지리라 단언한다.

나도 황금어장에 따라 나오는 라디오스타를 중단하지 못하고 계속 보고 있다.
김구라의 개그도 보고 신정환의 개그도 보고 또 무서운 현실에 차츰 적응해 가고 있는 김국진도 보고 있다. 그러나 실컷 따라 웃다가도 씁쓰레 한 뒷맛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나만 그런 것인가?